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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나를 버려야 더 좋은 디자인이 나와요"

뉴욕의 가능성을 작품세계로 승화한 건축가 김지룩 소장

HeyKorean (기사입력: 2017-03-1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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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미국 실내 건축분야에서 권위있는 ‘ARE’ 상에 이어 2013년 일본과 2014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각종 디자인 상을 휩쓸면서 건축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진 김지룩 언스페이스 소장을 만났다. 김 소장은 뉴욕에서 공부를 마친 뒤 ‘한국의 혼을 지닌 일본의 유명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 한국명 유동룡) 선생에게 사사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세대 한인 건축가들이 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과 가게 설계에 그쳤다면, 그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통해 전 세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손의 감각을 키워 영감을 얻어내겠다고 하는 꿈을 가진 그는 건축가 이기 이전에 예술가에 가까웠다.  

 







Q: 건축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김 소장: 아무래도 집안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자개 가구 공예를 하셨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쫓겨나면서까지 가구 공예에 매진하신 할아버지의 인생사를 듣고 어릴때 부터 동경했다. 자연스럽게 건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Q: ‘한국 혼을 지닌 일본 건축가’로 유명한 이타미 준 선생에게 사사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계기는 무엇인가?

김 소장: 콜롬비아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자신감이 넘쳐 있을 시기였다. 미국식 건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한국사람이다 보니 한국 혼을 지닌 유명 일본의 건축가 이타미준 선생의 서구적으로 풀지 못한 것을 현대적으로 풀어나가는 비법(?)을 배우고 싶었다. 마침 연락을 했는데 바로 오라고 해서 일본으로 달려갔다.

 

Q: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김 소장 :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었다. 건축을 하는데 형태가 없는(shapeless)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미국에서 내내 형태에 대한 연구만 했던 나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였지만 한 공간을 만드는데 건축물의 형태 뿐 아니라 자재, 시간, 바람 등 모든 주변의 요소와 같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Q: 이타미 준과의 일화가 있다면?

김 소장 : 선생은 뉴욕에서 배운대로 건축물 형태에 대한 얘기로 가득한 프레젠테이션은 듣지도 않으셨다. 그럴수록 더 오기가 나서 열심히 했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헤메고 있던 나에게 이타미준 선생은 쇠주전자에 차(Tea)를 주셨다. 한 달이 넘게 차만 타는 일을 했지만 온도가 맞지 않는다며 번번히 드시지 않았다. 당장 미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기가 생겨 일본 차에 대한 책을 찾아 연구하기 시작했다. 쇠주전자의 소리와 물의 패턴, 거품과 스팀까지. 차 한잔을 우려내는 방법에 대한 갖가지 고민만 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타미 준 선생은 내 차를 처음으로 마시며 티 하우스(Tea House)를 건축 프로젝트를 줬다. 일본 건축업계에서 티 하우스는 건축가의 내면을 모두 쏱아내 정체성을 나타내는 신성한 작업으로 여긴다. 일본 사무라이라고 해도 예외 없이 작은 문을 통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려 들어가야 하는 통로 니지리구치에서 가든을 거쳐 티 하우스로 이어지는 작업이다. 고민 끝에 평범한 자연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데 집중했고, 한국의 새끼줄을 이용한 모형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타미준 선생은 여기에 잉크를 바르라고 했다. 왜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새끼줄에 까만 잉크로 덧칠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새끼줄은 모더니즘으로 변해 있었다. 서양식 사고로는 풀어낼 수 없는 이타미준 선생만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티 하우스, 도쿄 1998)

  

Q: 다시 뉴욕으로 와서 2000년 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작품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김 소장: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전 전 세계 500개 사무소를 두고 100년이 넘은 상당히 인지도 있는 미국 회사가 브랜드를 바꾸고자 하는 입찰에서 최종 선택됐다.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의 섬세한 디자인 계획을 인정해준 것 같다. 심지어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그 회사는 목표 수익 구조도 바꾸었다.

 



(마이수트 월스트릿, 뉴욕 2011)

 

Q: 건축학도 또는 건축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김 소장: 건축가를 요리사에 많이 비유한다. 나는 요리를 과학이라 생각한다. 식재료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이해를 바탕으로 요리사의 영감이 들어가야 훌륭한 요리가 나올 수 있다. 건축 역시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 나만이 갖고 있는 틀을 깨고 버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모두 다 같은 정보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다 보면 틀을 깨는 디자인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감은 한 순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철저한 조사 없이 선을 하나 긋는다는 것은 고객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란 점을 명심하면 된다.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어떤 재료와 디스플레이가 필요한지, 누가 구매하고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공간과 소통해야 한다. 자신이 없어질 수록 디자인은 더 살아난 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김 소장: 지금까지 머리에서 나오는 영감으로 디자인을 해 왔다면 앞으로는 손의 느낌을 더욱 찾아내는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오토바이를 직접 고치다 보면 손에서 뭍어 나오는 또 다른 영감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손으로 다뤄 그 감각을 키워가고 싶은 것이 계획이다.

 





(한국문화원, 워싱턴DC 2012)

 

HeyKorean Media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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